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노년의 인문학

논어에 나오는 ‘위기지학’, 공부의 재미를 논한 공자

노년층 인문학 열기에서 새삼 확인한 배움의 희열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 부남철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  |   입력 : 2023-03-08 19:57:21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이것은 논어의 첫 문장이다. 논어 전체를 대표하는 문장이며, 또한 맹자 대학 중용까지도 사실상 이 한 문장으로 그 정신이 요약될 수 있다. 그래서 첫머리에 배치한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이런 말을 접할 때 선뜻 수긍이 가질 않는다. 어떻게 공부가 즐겁단 말인가? 특히 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때는 ‘논어집주’라는 책을 본다. 이것은 논어의 원문에 더하여 집주(集註)라는 주자(朱子)의 해설을 함께 붙인 책이다. 철저하게 정제된 용어를 사용하면서 결코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주자의 성격 때문에 집주는 오히려 논어 본문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그렇지만 또한 논어의 핵심을 이처럼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더 이상의 참고 자료는 없다. 바로 이런 집주에 의하면, 논어의 첫 문장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위기지학은 자기 인격을 수양하는 공부를 말한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부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와 반대로 ‘위인지학(爲人之學)’은 시험공부와 같은 것이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할 때 그 공부는 시험공부이며 출세를 위한 공부인 것이다. 결국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험에 합격하여 그 능력과 자격을 공인받기 위해 하는 공부가 위인지학이다. 어느 누가 이런 공부가 즐겁다고 할 것인가?

논어는 그야말로 자기 인격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의 고전이다. 그렇지만 이런 공부도 처음에는 즐겁지가 않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라는 도덕적 교훈으로 연속되는 이 책을 읽으면 스스로 각오를 다지게 되고,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공부를 하는데 즐겁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야말로 현인(賢人) 군자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야말로 득도의 수준인 것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면서 그 순간을 감격적으로 표현했다. 논어를 공부하면서 언제 그런 감동과 희열이 찾아올 것인가? 공자도 공부하는 사람들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공부가 즐거운 것이었다면 그냥 “공부할수록 즐겁다!”고 말하면 그뿐이었을 것이다. 실제가 그렇지 않기에 논어를 시작하면서 세 번이나 애써 “그렇지 않느냐?”고 간절하게 호소한 것이다.

이런 위기지학은 인문학에 속하는 것이고, 조선시대에는 이런 공부를 하면 저절로 문장 실력도 늘어서 과거시험에도 합격하고 평생을 잘 살 수 있었다. 문장력과 인격을 겸비했으니 당시 공직자로서 적합한 자질을 갖춘 셈이었다. 학덕으로 알려진 사람은 추천에 의해 공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 수준에 있는 분들은 오히려 공직을 사양했다. 그럴수록 계속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늘어났다. 자기는 다만 인격 수양에 전념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세속적인 성공이 저절로 따라오는 그런 상황이었다. 아직도 이런 논리가 통하는 곳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직업에 관한 전문 지식을 배우는 위인지학이 더 강조되는 세상이 되었다. 위기지학을 공부한 인문학 전공자들은 관련 전문직으로 진출할 때 치열한 경쟁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인문학에 다시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세대가 있다. 바로 장년과 노년의 세대이다.

2006년 CNN 긴급뉴스로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이 별세했다는 기사가 자막에 나왔다. 세계인 모두가 애도할 정도로 그녀는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가였으며 세상을 바꾼 사회운동가였다. 여성에게 제 자리를 잡게 해준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라는 그녀의 책은 1963년에 간행된 이래, 페미니즘 운동의 고전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만년에 두 번째 역작을 냈는데, 바로 ‘노년의 샘(The Fountain of Age)’이라는 책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더 치명적이고 만연해 있다고 고발했다. 노년을 젊음과 삶의 쇠퇴로 바라보는 부당한 편견에 맞서며, 그녀는 수많은 사례조사를 통하여 노년이야말로 젊은 시절에는 하지 못했던 도전과 모험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의 시기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을 노년의 한 특징으로 지적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번역된 책은 없다.

최근 대학의 인문학 교실로 돌아오는 장년, 노년의 세대가 또한 늘고 있다. 젊었을 때 꿈이었던 인문학을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평생의 공부나 직업으로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논어를 읽으면서 공부의 희열을 말하는 그 문장에 공감하고 있다. 삶의 경륜으로 동서양의 고전과 예술과 문학을 관조하는 그들에게, 이제 자기의 본래 자리로 돌아온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무한한 격려를 보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3. 3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4. 4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5. 5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6. 6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7. 7“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8. 8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9. 9“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10. 10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1. 1용산 참모 30여 명 ‘총선 등판’ 전망…PK 이창진·정호윤 등 채비
  2. 2“용맹한 새는 발톱을 숨긴다…” 잠행 장제원의 의미심장한 글
  3. 39일 파리 심포지엄…부산엑스포 득표전 마지막 승부처
  4. 4국정안정론 우세 속 ‘낙동강벨트’ 민주당 건재
  5. 5김진표 의장, 부산 세일즈 위해 해외로
  6. 6추석 화두 李 영장기각…與 “보수층 결집” 野 “총선 때 승산”
  7. 76일 이균용 임명안, 민주 ‘불가론’ 대세…연휴 뒤 첫 충돌 예고
  8. 8추석연휴 민생 챙긴 尹, 영수회담 제안에는 거리두기
  9. 9포털 여론조작 의혹에 대통령실 "타당성 있어" 與 "댓글에 국적 표기"
  10. 10강성조 "자치경찰교부세 도입 필요, 지방교육재정 재구조화 고민해야"
  1. 1BPA, 취약계층에 수산물 선물
  2. 2내년부터 주택 임대차 계약 신고 때 공인중개사 정보 기재 의무화
  3. 3스타벅스 거대용량 트렌타 사이즈 상시판매
  4. 4“서류심사 공정성에 문제”…산업은행, 신입행원 채용 일정 연기
  5. 5부산 아파트 매매지수 보합세 눈앞…3주 연속 -0.01%
  6. 6"데이터센터 설립 신청 68%, 부동산 이익 목적 '알박기'"
  7. 7'박카스 아버지' 동아쏘시오그룹 강신호 명예회장 별세
  8. 8'하도급 대금 연동제' 4일 시행…연말까지 계도기간 적용
  9. 9고물가에 등골 휜 추석…소외받는 사람 줄길
  10. 10"반 카르텔 외치더니…공기업 '낙하산' 산업부에서만 34명"
  1. 1정규반 신입생 52명 뿐인 부산미용고, 구두로 폐쇄 의사 밝혀
  2. 29년새 우울감 더 커졌다…울산·경남·부산 증가폭 톱 1~3
  3. 3부산 중구 ‘1부두 市 문화재 등록 반대’ 천명…세계유산 난항
  4. 4시민사회가 주도한 세계 첫 국가공원…스웨덴 자랑이 되다
  5. 5국제신문 사장에 강남훈 선임
  6. 6“을숙도·맥도 생태적·역사적 잠재력 충분…문화·예술 등과 연대 중요”
  7. 7주차 들락날락 사고위험 노출…사유지 보호장치 강제 못해
  8. 8“양산 웅상 현안 다양한 의견 모아 행정에 반영 보람”
  9. 9골프 전설들도 그린 위 엑스포 응원전(종합)
  10. 10오늘의 날씨- 2023년 10월 4일
  1. 1AG 축구 빼곤 한숨…프로스포츠 몸값 못하는 졸전 행진
  2. 2‘삐약이’서 에이스된 신유빈, 중국서 귀화한 전지희
  3. 3남자바둑 단체 우승…황금연휴 금빛낭보로 마무리
  4. 4우상혁 높이뛰기서 육상 첫 금 도약
  5. 5임성재·김시우 PGA 롱런 열었다
  6. 65년 만의 남북대결 팽팽한 균형
  7. 7롯데, 포기란 없다…삼성전 15안타 맹폭격
  8. 8[속보] 한국 바둑, 남자 단체전서 금메달
  9. 9'박세리 월드매치' 7일 부산서 개최… 스포츠 스타 대거 참석
  10. 10세리머니 하다 군 면제 놓친 롤러 대표 정철원 “너무 큰 실수”
우리은행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싱가포르다움’을 위한 그들의 선택
우리는 제1부두를 맘대로 할 자격이 없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자들의 소통방식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기고 [전체보기]
대통령의 ‘서울·부산 2개 성장 축’ 실현되려면
안전한 세상에서 아동은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교권회복 시킨다더니…교육부, 교사 집단연가에 으름장
‘고삐 풀린’ 부산 분양가 괜찮나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꼰대세상
파격적 세대교체를 소망한다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달’ 대신 ‘손가락’만 보세요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양말 뒤집어 신기
‘학생의 날’이 있다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자연과 인간을 잇는 원초적 매개체
무대 밖으로 뛰쳐나온 예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PK는 목마르다
이젠 팬이 원하는 감독을 보고 싶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남성만 병역의무
3위가 목표인 대회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명란과 옹기
시즈오카의 녹차 젤라또
사설 [전체보기]
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선택과 집중’ 열매를
추석 긴 연휴에도 여야 대치, 민생 협치로 풀어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명절 때 나눌 치매 예방 이야기
역사 전쟁과 자유론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실손의료보험 청구간소화와 의료민영화
간호법 제정안과 지역사회 보건의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해인의 서랍에서
친구에게 추천하는 두 권의 책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독일을 보면서 곱씹어보는 교훈
골짜기 세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불편한 제의
사적 공간의 미학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야만의 과학
밥의 길, 쌀의 미래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글로컬대학 30, 성공은 총장 리더십에 달렸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잼버리 파행을 부산엑스포 전화위복으로!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되살리려면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화해의 와인
와인, 스토리텔링
특별기고 [전체보기]
수산업 몰락 재촉하는 후쿠시마 방사능 선동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가 비과학적인 이유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12음기법
바이로이트 음악축제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화가 장욱진이 온다
황창배의 ‘곡고댁(哭高宅)’
CEO 칼럼 [전체보기]
해양도시의 메카, 부산
세계박람회와 벡스코 제3전시장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