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70대 할머니들의 외모를 보면 자녀 구성을 얼추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나이에 비해 젊고 예쁜 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걸치고 있으면 영락없이 딸 부자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친정 부모를 더 살뜰히 챙기는 쪽은 아들 보다 딸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이런 할머니들은 아들만 키우는 새댁을 만날 때면 과거 자신이 시댁에서 받았던 설움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혀를 끌끌 찬다. “힘들겠다, 우짜노.”

세태 변화를 실감하는 창구 중 하나가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 대표적이다. 2004년만 해도 병역법 위반이 맞다는 게 다수였고, “병역 의무와 양심의 자유 사이 갈등 관계를 해소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없다.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는 생각은 소수였다. 그러나 14년 뒤인 2018년 이 소수의견은 다수가 된다. 재외국민 참정권, 야간옥외집회, 공무원 가산점, 혼인빙자간음 등과 관련한 판단이 모두 한때 소수였다가 다수 지위에 올라선 경우다. 사실이 달라지면 의견이 달라지고 세상이 바뀌면 판결도 바뀌는 게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한 의료법을 두고 6 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 성별을 부모에게 가르쳐 주지 못하게 한 처분은 생명 보호 수단으로 더 이상 적합하지 않고 부모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한다고 본 것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2008년엔 금지를 유지해야 한다고 봤는데 15년 만에 뒤집혔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흥미로운 건 “여전히 제한해야 한다”며 재판관 3명이 남긴 소수의견이다. “남아 선호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다”고 우려하면서다. 즉, 이제는 여자아기를 낳기 위해 남자아기를 낙태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2023년 현재 출생아 성비는 105.1명(여아 100명당 남아수)이다. 1990년(116.5명)에 비하면 남아 비율은 현저히 떨어졌다. 남아 선호가 제일 많이 반영되는 셋째 아이의 경우 1990년엔 189.9명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역시 최근엔 105명대로 낮아졌고, 지역에 따라서는 여아가 훨씬 많아 80~90명대 성비를 기록하기도 한다. 보수 성향이 강한 부산 울산 경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젠가 여아 선호 때문에 성별 고지 금지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출생아 감소로 국가 소멸위기에 처한 한국으로선 여아든 남아든 그 자체가 축복임에는 틀림없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