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헌법 재판은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헌재)를 설치해 운영한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그 결실로 이뤄진 제6 공화국 헌법에서 확립한 제도다. 사법부 소속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헌재는 제3의 중립기관으로서 위헌법률을 심판하고, 국가기관 간 다툼이 있을 때 각 기관의 권한 한계를 다룬다(권한쟁의 심판). 또 국민 개개인이 법률 등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받았을 경우 헌법소원 심판을 진행한다. 무엇보다 고위공무원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소추 심판을 한다.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할 땐 국가 운명도 좌우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헌법재판관 개개인 성향도 매우 중요하다. 탄핵이 이뤄지려면 재판관 9인 가운데 6인이 찬성해야 한다. 정가에서는 어떤 재판관이 진보냐, 보수냐로 구분한다. 같은 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편 주장이나 행위에 쉽게 동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재판관 임기를 대통령보다 긴 6년으로 해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한다.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탄핵소추할 수는 있지만 그 심판은 헌재가 하기 때문에 탄핵소추 위협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요즘은 성역으로 여겨졌던 판·검사들도 일상적으로 탄핵이 언급된다.

얼마 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헌법재판관)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에서 국회를 질타해 화제다. 국회는 이 위원장 소추 이유 중 하나로 ‘방통위 2인 체제 의결’을 문제 삼았다. 문 대행은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에게 “국회가 방통위원 3인을 임명하지 않고 2인 체제에서 의결한 것을 소추하면 되느냐. 행정부인 방통위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란 취지로 말했다.

국회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2대 국회 들어서 제3의 기관으로부터 이런 질타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 대행은 소추위원(더불어민주당) 측과 같은 성향으로 여겨졌다. 이날 변론을 계기로 국회가 헌재의 파행 운영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 더욱 알려졌다. 국회가 한 달 이상 공석인 국회 추천 몫 3인의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던 사정이 불거졌다. 국민적 비난을 받은 국회는 이제야 헌재 정상화에 나설 조짐이다.

새 헌재재판관은 기본적인 공무원 자질을 갖춘 것은 물론 자신의 성향으로부터 독립해 판단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문 소장대행 같은 분이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국민이 정치와 국가를 걱정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