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이 무렵이면 바닷속에서는 다양한 해조류의 활발한 성장이 시작된다. 여름 바다는 김이나 미역, 다시마 등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해조류들이 자라기에 너무 엄혹한 환경인 모양이다. 해조류들은 사상체, 배우체 등으로 몸의 형태를 바꾸고, 크기도 줄여 더운 여름을 넘기고, 수온이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내려가면 좋아하는 기질에 붙어 싹을 틔운다. 육지 식물들이 봄에 생육을 시작해 여름에 왕성하게 자라는 것과는 다르게 바닷속 해조류는 가을에 싹을 틔워 겨울철 동안 무성하게 자란다. 이렇듯 해조류와 육상식물을 놓고 보면 바다와 육지는 계절이 완전히 뒤바뀌어 흐른다. 물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종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즐겨 먹는 김 미역 다시마 등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해조류를 즐겨 섭취했다. 900년 전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라는 사람이 고려 개경에서 한 달간 머물다 돌아가서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 사람들이 해조(海藻)·다시마(昆布)를 귀천 없이 잘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해조류 좋아하는 우리의 식습관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생명이 세상에 태어난 소중한 날, 아이 낳은 산모는 며칠 동안 미역국을 먹고, 또 이 아이는 자라면서 해마다 생일날이 되면 역시 미역국을 먹는다. ‘식품수급표’에 따르면 2022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해조류 공급량은 25.6㎏(하루 평균 70.2g)으로 나타나 있다. 물론 이 통계는 공급량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실제 소비량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생각된다.
해조류 좋아하는 한국인의 시선을 붙잡는 또 하나는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해조류에 많다는 사실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표준수산물성분표’(2018)에 따르면 해조류에는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있다. 이들 성분 중 알긴산 푸코이단 카라기난 우무 등의 식이섬유는 사람의 소화효소로는 거의 분해되지 않아 비만을 예방하고 혈압과 혈당,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일부 암에 대해서는 예방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에는 갈조류의 일종인 감태 속의 항산화 성분이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다. 해조류의 다양한 건강기능성이 해를 거듭하여 보고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또 어떤 효능이 밝혀질지 사뭇 기대된다.
그런데 해조류에 건강기능 물질이 많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요오드 성분 때문에 많이 먹어서 오히려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요오드는 인체에 꼭 필요한 필수 미량원소로, 적게 먹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섭취해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평균 요오드 섭취량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1일 권장섭취량을 초과하는 수준이라 하니 그렇게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갑상선 질환과 해조류 섭취량과의 역학관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얼마 전 세브란스병원 등에서는 갑상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요오드가 많이 함유된 음식 섭취가 갑상선암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해조류를 자주 섭취하면 갑상선암 유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매주 5회 이상 해조류를 먹으면 1회 미만으로 먹었을 때보다 갑상선암 유병률이 58%나 낮아져 적절한 해산물 섭취가 오히려 갑상선암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나 기능저하증, 갑상선암 등 갑상선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보통 식사하는 정도의 해조류 섭취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모든 식품에는 건강에 유익한 성분(benefit)과 해로운 성분(risk)이 함께 들어있다. 이들을 잘 따져 유익성이 훨씬 큰 식품이라면 작은 해로움을 걱정해 섭취를 기피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해조류는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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