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텍스트 힙‘이라는 신조어가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면서 독서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을지, 일시적 유행으로 그칠지 여러 의견이 나오던 순간 듣게 된 수상 소식이라 더욱 반가웠다. 다시 책과 독서가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을 것 같은 청사진이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수상 발표가 나던 순간, 필자가 운영하는 서점에서는 북토크 행사가 한창이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참가자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BTS의 빌보드 차트 1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서점에 있던 한강 작가의 책은 단 한 권도 남지 않고 모두 판매되었다. 참가자들은 ‘이제 노벨문학상 특수를 누리나요? 사장님 책 많이 파셔야죠!’하고 덕담을 건넸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주문하기 위해 대형서점의 도매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모두 품절 상태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인터넷 서점에서 단 하루 만에 30만부가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도 없었고, 밀려드는 소매 주문을 처리하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하루이틀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책을 구할 방법이 없었고, 애써 찾아오거나 문의하는 손님에게 ‘죄송하다’는 변명만 반복할 뿐이었다. 국내 도서 유통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책은 수상 소식 발표 2주 뒤부터 아주 조금씩 도착했다. 기일을 알 수 없는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서 책을 구입했지만, 한강 작가 또한 ‘만성 적자’ 동네서점을 지키는 책방지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번 책은 꼭 동네서점에서 살 거예요’라며 선뜻 기다림을 자처하는 이도 생겨났다. 특히 해당 소식을 통해서 동네서점이라는 개념과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며 새로운 손님이 종종 찾아왔다. 학생용 참고서와 문제집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방지기의 취향으로 큐레이션 된 매력적인 문화공간의 존재가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강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대가도 없이 우리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잘 보이도록 매대와 서가에 진열해 두면,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얼른 선택하기 어려웠던 그 책들을 손님이 만나게 된다. 그 반가운 순간들이 서점을 운영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동네서점은 좋은 책을 발견하고 소개하는 즐거움을 갖고 있는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숨겨진 보물 같은 책이 다시금 주목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운 손님들은 신간과 구간이 섞여 있고, 이웃 작가와 출판사의 책도 만날 수 있는 구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강 작가의 책만 사는 이도 있지만, 여러 책을 살펴보며 새롭게 발견한 책을 한두 권씩 더 사는 이가 늘어났다. 한강 작가의 바람이 이곳에도 전해진 덕분일까, 크레타 서점의 10월 베스트 셀러 7권 중 3권이 이웃 작가의 책으로 선정되는 값진 결과를 얻었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책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서 독립서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는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활력을 증진시키며, 다각화된 활동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이때 독립서점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커뮤니티 의식을 강화하며, 젊은 인재들의 지역 정착을 유도한다.”

청년 인구 유출 문제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부산시의 입장이라면 독립서점을 청년 커뮤니티의 거점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며 한해 60억 원 규모로 운영해 온 ’국민독서문화 증진사업‘이 통째로 사라지며 영업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곳 이상의 크고 작은 서점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 향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 중이다.

‘텍스트 힙’ 현상에 이어 ‘노벨 문학상 수상’까지 독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순간보다 높은 지금 “동네서점으로 책의 다양성이 지켜진다. 독자들이 책방의 문화행사를 찾아가면 생활의 패턴이 달라지고, 읽는 책도 늘어난다. 결국 삶의 패턴도 달라진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다시 한번 독서 문화가 꽃필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