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지난달 29일, 말기 환자가 의학적 도움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력 사망 법안’이 하원에서 찬성 330표, 반대 275표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여생이 6개월 이하로 남은 시한부 성인 환자가 독립적인 두 명의 의사와 판사의 승인을 받아, 의사가 준비한 약물을 스스로 투여하여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 발의자인 킴 리드버터 노동당 의원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죽는 방법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안은 앞으로 하원 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상원에서의 표결 등 남은 절차가 있어 최종 법제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력 사망은 환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종결하기 위해 의료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환자가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받아 이를 스스로 복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력 사망에 대한 내용이 2022년에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으로 제시되었지만 수용되지 못했고, 2024년 7월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조력존엄사법) 제정안으로 수정되어 발의되었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행위를 처음으로 허용한 나라는 스위스이며 1942년부터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조력 자살은 의료진이 환자에게 약물을 제공하거나 처방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말기 환자 뿐만 아니라 진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도 해당되는데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여할 수 없을 경우 의료진이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력 사망이나 안락사와 구분된다.

스위스는 아직 조력 사망과 안락사는 허용하고 있지 않는데 이는 환자의 자율성을 가장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력 사망과 달리 의료인이 직접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의 첫 합법화는 2002년 네덜란드이며, 네덜란드는 조력 사망과 안락사를 모두 허용하고 있다. 2003년에는 벨기에에서 조력 사망, 조력 자살, 안락사가 합법화 되었으며 2014년부터 연령 제한 없이 미성년자도 부모 동의 하에 가능해졌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왔고 호주의 일부 주, 캐나다 등에서 법적 허용 범위와 조건은 상이하지만 절차들이 갖추어졌다.

성숙한 사회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권과 가치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곳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해서 어릴적부터 토론하고 스스로 생각을 만들어가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단순히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를 제공하기 어려운 약자이기 때문에, 또는 사회에서 영향력을 주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을 강요하는 형태로 삶이, 죽음이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국민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권리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어야 한다. 나이가 들고 아프기 전에 죽음이란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공부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어릴적부터 어른들이 어떻게 나이들어가고 쇠약해지는지를 알 수 있도록 유치원과 노인 커뮤니티 시설이 교류할 수 있어야 하고 초중고에서 체육활동을 통해서 신체 기능이 훈련에 의해서 어떤 형태로 발전하고 달라질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몸을 단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갑자기 아파서 거동이 어려운 어른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이런 어른들이 지역사회에서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런 안전한 장소에는 당연히 지역의 어르신들이 필요시 머무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내 안전한 장소가 마련된다면,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소통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다. 특히 대학 캠퍼스는 이러한 역할을 맡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청년 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이 지역사회를 위한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연결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공간으로서, 열린 교육을 실현하는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나는 꿈꾼다. 병원이 아닌, 병원을 포함한 대학캠퍼스가 많은 사람이 왕래하면서 질병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고, 삶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이별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삶의 마지막 학교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