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 해의 끝이다. 그리고 겨울의 한가운데 있다. 이 시기면 늘 듣는 음악, 바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다. 연가곡이란 일련의 얘기가 있는 연작시에 노래를 붙인 장르로 보통 슈베르트를 그 효시로 친다. 슈만 브람스 등 낭만의 작곡가가 걸작을 많이 남겼다. 슈베르트의 두 번째 연가곡인 겨울 나그네는 실연한 청년이 연인이 사는 마을을 뒤로 하고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는 내용으로서 제1곡 ‘밤 인사’(당신을 깨우지 않고 창가에 밤 인사를 적어놓고 나는 떠나네)로 이 슬픈 여행은 시작된다. 학창 시절 한 번씩은 불러보았을 성문 앞 우물곁에 있는 ‘보리수’를 만나고 내 눈물이 흘러 홍수가 되어 연인의 집 앞까지 가길 바라는 ‘홍수’, 암울한 겨울에도 봄을 기다리는 ‘봄의 꿈’, 행여나 님에 대한 소식인가를 다룬 ‘우편 마차’,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망설이는 ‘이정표’, 빨리 이 젊음이 지나갔으면 하는 ‘백발머리’, 아무도 듣지 않는 한 노인이 돌리는 손풍금 ‘노 악사’를 마지막으로 이 연가곡은 끝난다. 청년이 여정에서 만나는 순간과 감정을 하나하나 노래하는 총 24곡의 노래는 어느 곡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아름답다. 이 작품은 연가곡의 최고 금자탑이며 성악가들에겐 평생에 한 번은 순례를 가야 하는 불멸의 성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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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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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는 가곡으로만 흔히 알려졌지만 겨우 31살의 생애에 가곡 600곡, 교향곡 9곡, 피아노 소나타 21곡, 현악4중주 15곡, 오페라도 10곡(대본 문제로 잘 연주되지 않지만), 1000곡 이상을 남긴 작곡가다. 슈베르트는 친구에게 “나는 이 세상에 작곡하러 왔어”라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속필과 다작이었다. 그의 친구 슈파운에 따르면 작품번호 1번인 ‘마왕’은 시를 읽고 방안을 왔다 갔다 하던 중 책상에 앉아 순식간에 곡을 썼다고 한다. 슈베르트가 11살 왕실 신학교 소속 교회합창단에 있을 때 음악을 가르쳤던 벤첼 루치카는 “이 아이는 이미 신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소”라며 더 가르칠 게 없다고 했다. 그런 슈베르트도 내 음악의 문제점은 대위법이었다며 이론가 제히터에게 엄격대위법을 배우기로 결심한다. 결국 슈베르트의 사망으로 그 일은 무산됐지만 그가 결코 재능만으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려주는 일화이다. 슈베르트의 음악만을 연주하는 사교모임인 슈베르티아데에선 슈베르트보다 거의 30년 정도 연상인 테너 포글이 슈베르트 노래의 진가를 알아보고 즐겨 부르며 그의 노래를 알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포글은 슈베르트에겐 귀인이었다. 슈베르트는 평소 베토벤을 존경했으나 베토벤이 죽기 일주일 전에야 두 거인의 만남은 겨우 성사된다. 그리고 1년 뒤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뒤를 따랐고 유언대로 베토벤의 곁에 안장되었다. 빈의 중앙묘지에는 지금도 두 거인이 나란히 누워있다. “슈베르트는 시가 노래를 하고 음악이 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릴파르처의 말이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선율에 대해 “고도로 압축된 서정적 광기”란 표현을 썼다. 슈베르트는 말년에 천재로 서서히 알려지긴 했지만, 생전에 자신의 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의 온당한 평가는 사후 40년이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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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는 친구들과 맥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작곡만 했던 이 수줍은 청년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이맘때면 우리도 사실 모두 겨울 나그네가 된다. 나만의 보리수를 찾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이정표 앞에서 망설이기도 한다. 거리의 노 악사에게서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우편 마차를 기다리고 봄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