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아내에게 기념일용 책을 만들어 선물하려는 저자와 작업했는데, 책에는 아내와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서로에게 빠져들며 사랑을 키워나간 이야기, 결혼 준비 과정, 신혼 일기, 아이가 태어난 이후 일상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이 크게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궁금해할 이유도 없지만, 오로지 한 명의 독자만을 위해 만든 책이어서 괜찮았다. 둘만 알고 있는 소중한 추억과 내밀한 이야기, 당시의 진솔한 감정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기만 하면 충분했다.
소장용 책을 만드는 자그마한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이야기와 마주한다. 최근에는 회사 생활 이야기, 육아 일지, 음식 에세이, 프러포즈 책, 생일 기념 선물용 책 등 다양한 소재의 책을 만들었다. 각각 책을 쓴 목적이 다르고 내용도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두께가 얇고, 독자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 책에는 자신의 책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가득 담겨 있다.
기성 출판의 영역에 있을 때 책을 기획하는 몇몇 기준이 있었다. 얼마나 팔릴 것인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필력이 좋은가 등이었다. 다만 이에 비해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충분히 조명하지 못했다. 예비 저자가 아무리 자신의 책을 쓰고 싶은 욕망이 크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책을 만들 수는 없었다. 출판사는 책을 판매한 돈으로 유지해야 하는 회사였기에 확실한 포인트가 없으면 함부로 출간을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기성 출판에서 벗어나 독립 출판의 영역에 들어오니, 책을 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졌다. 과거에 세운 책 기획에 관한 기준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비매품 소장용이니 마케팅 포인트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애초에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니 사회적인 의미를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지막으로 필력이 좋으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독자가 이미 정해져 있으며 책을 쓰는 목적이 뚜렷했기에 마찬가지로 크게 상관이 없었다. 대신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바로 책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비록 글쓰기가 서툴더라도 뚜렷한 목적과 강한 의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책이 나왔다. 책 쓰기에 대한 욕망이 출판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독립 출판의 영역에 있다는 것은 책 쓰기에 대한 뜨거운 욕망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책보다 재미있는 게 넘쳐나는 시대에, 내가 만든 책은 재미있고 사회적으로 의미도 있으니 읽으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마치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만큼이나 공허하게 다가왔다. 반면 자신의 책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책을 만들어주는 일은 사뭇 달랐다. 이는 희미해지는 욕망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이미 존재하는 욕망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충족해 주는 것의 차이처럼 다가왔다.
출판 경기가 갈수록 얼어붙고 있다. 문을 닫는 출판사가 점점 늘어나고, 한때 사람이 넘쳐흘렀던 독서모임과 독립서점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단군 이래 출판이 호황인 적이 없었던 걸 고려하면, 이러한 경향이 바뀔 날은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이 다시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을 날이 올 거라 믿는다면, 사람의 욕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서율이 줄며 독서 인구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 심각한 일이지만, 책을 쓰려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모두가 책을 더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모두가 책을 쓰는 세상을 꿈꾸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바야흐로 아무도 읽지 않지만, 누구나 쓰는 시대가 되었다. 책을 향한 욕망도 ‘읽기’에서 ‘쓰기’로 바뀌고 있으며, 자연스레 우리 사회는 책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을 맞이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독자가 있기에 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책의 존재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책을 그저 인간이 만든 하나의 상품이 아닌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본다면, 책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과감히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책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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