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장안의 화제다. 제주도 방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는 뜻의 제목을 가진 이 드라마는 60년대부터 이어지는 한국인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세대를 불문하고 첫 회부터 눈물바다라며 ‘인생드라마’라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 또한 시대를 넘어 공감을 일으키는 인생 이야기에 매번 감동하고 있다.

여러 장면들이 좋았지만, 주인공 애순이와 딸 금명이가 나눈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딸 금명이는 남자친구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하자 속이 상한다. 그래서 괜히 엄마에게 화풀이를 한다. 금명이는 엄마에게 “가난과 궁상이 자랑이냐고, 엄마처럼 안 살 거다”고 말한다. 그러나 애순이는 “그래,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힘들었어도 그 삶을 저주하는 게 아니라 긍정한다. 그래서 “딸이 엄마 인생도 좀 인정해주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 단단함이 좋았다.

멀리서 바라볼 때, 남의 삶은 참 별로거나 참 부럽게만 보인다. 그러나 참 ‘별로’로 보이는 삶도 그 사람 입장에서는 긍정할 만한 삶일 수 있고, 부럽게만 보이는 삶도 그 당사자에겐 불안하고 저주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대체로 긍정하는 삶엔 진실한 사랑이 있다. 삶을 긍정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좋았다. 그럼에도 사랑해서 괜찮았다. 돌이켜 보면, 그래도 내게는 나의 사랑이 있어, 그 시절을 바꾸고 싶지 않다. 슬프고 힘든 일이 참 많았지만, 다시 살아도 나의 사랑과 그 시절을 살 것이다.”

애순이가 “엄마 인생도 나름 짱짱했어”라며 그 삶에도 나름대로 “그림같은 순간”이 많았다고 할 때, 그녀는 삶을 사랑으로 긍정하고 있다. 젊은 시절 가난하고 고달팠지만, 그 가난의 틈새를 어떻게든 빛나는 사랑으로 채워냈다. 애순이는 젊은 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내 딸은 아궁이 앞에서 불만 피우고 살지 않을 거고, 할머니처럼 해녀로 살다가 요절하게 절대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와 별개로 자신의 삶을 저주하지 않고, 그래도 사랑해서 빛났다고 말한다. 나는 그 긍정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밤에 드라마를 보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장면이 머릿속을 그토록 맴돌았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릴 적, 유모차 끌던 날들이 생각났다. 멀리서 아내가 운동을 다녀오고 있었다. 나는 공부하던 시절이었으니, 종일 공부를 하고 와서 아이를 잠시 보다가 유모차에 데리고 아내 마중을 나가고 있었다. 아마 벚꽃 내리던 봄날이었거나 노을이 예쁜 가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다. 그들의 고달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내는 산후우울증이 있었고, 나도 나름 고된 수험생활 중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시절에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저마다 사람에게는 그런 시절과 그런 장면이 있을 것이다. 누구든 어떻게 이 삶을 이겨낼까, 과연 내가 이 시절을 극복할 수나 있을까 두려워하는 때를 만난다. 동시에 그 시절 안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어떻게 찾아내기도 한다. 삶이란 어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빛나는 조각들을 발굴하는 일이다.

드라마에서는 애순이가 부모를 잃고 자식까지 잃는 여정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삶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는다. ‘살면 살아진다’가 이 작품의 메시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이를 잃고 비탄에 빠진 애순이를 온 마을 사람들이 도와준다. 서로가 기대어 슬픔을 나누며 ‘살면 살아지는’ 삶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삶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삶은 긍정하느냐 마느냐의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랑하면 이기는 것이고, 사랑하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모든 삶에는 그 삶을 사랑할 권리와 자격이, 그리고 방법이 있다. 모든 삶에는 슈크림빵처럼 슈크림을 집어넣을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있다. 그 틈새에 사랑을 집어 넣으면, 그 속에서도 그림 같은 순간들이 피어난다. 그 삶은 사랑으로, 나름 짱짱해진다. 다른 누구의 삶과도 바꾸지 않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