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4일 오전 11시22분부터 전직 대통령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날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인용해 파면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11시22분 주문을 읽는 순간 그의 신분은 바뀌었다. 그가 지난해 12월 3일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빌미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만이다. 불면의 밤을 보냈던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찾았다.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106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제 조기 대통령 선거가 60일 이내에 실시된다. 극심한 분열을 극복하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무역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대선 정국에서 진영간 대결보다 도탄에 빠진 민생과 경제를 회복할 지혜를 모으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아울러 정치권은 ‘사류 정치’를 개혁하지 않고는 국가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분골쇄신해야 하겠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가운데)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쟁점에 단호했다.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 측이 제기한 모든 사항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해도 헌법과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계엄이 단시간에 해제돼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소추 사유에서 형법상 내란죄를 제외한 것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유지하면서 했기 때문에 소추 사유의 변경·철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대통령 지위를 탈취하기 위해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했다는 주장 역시 인용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고 군인·경찰 투입으로 국회 권한 행사를 방해한 점도 인정했다. 포고령은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보내 헌법기관 독립성을 저해했고, 법조인 체포 목적으로 위치 확인을 시도해 사법권 독립도 침해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이 모든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파면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으로 빚어지는 국가적 손실보다 크다고 본 것이다. 재판관들이 개인을 향한 인식 공격성 비난을 감내하고 속단의 유혹을 이겨내며 이룬 명쾌한 결정이다.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하려고 애쓴 모습이 역력하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 후 3시간가량 지난 뒤 메시지를 냈다. 승복 내용은 없었으나 불복 선언도 없어 사실상 승복이나 다름 없었다.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용산시대를 열고 ‘4+1’ 개혁을 추진했으나 의정 갈등에 발목이 잡혔고,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에 실패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했다. 국민의힘은 대국민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헌재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히 수용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는 입장이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내란의 겨울을 이겨냈다. 민주주의 새 봄날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이날 선고는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뼈 아픈 우리 현실이다. 당리당략에 매몰되지 말고 정치 수준을 높일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새로운 국가 리더십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6월 3일이 유력한 대통령선거일로 예상된다. 정부는 탄핵심판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고 대선을 차질없이 준비해야 하겠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대국민담화에서 “안보·외교에 공백 없도록 굳건한 안보태세를 유지하겠다. 대선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개혁에도 속도를 내야 할 때다. 개헌할 것은 하고, 선거제도를 바꿀 것은 바꿔야 이번 사태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탄핵 정국으로 빚어진 극한 갈등을 위기 극복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할 때다. 비상계엄으로 인해 나라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쳤다. 슬기롭게 극복할 힘이 우리에게 있다. 위대한 승복을 한 국민이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