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곳에서 살고 싶습니까?

사람마다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갤럽이 발표한 2024년 부동산 트렌드에 따르면, 주거지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건으로는 교통의 편리성(52%), 직장과의 거리(47%), 생활편의 및 상업시설 접근성(40%)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뒤를 이어 주택 가격(29%), 쾌적한 주거 및 자연환경(23%), 교육 여건(17%), 개발 가능성 및 투자 가치(16%), 지역적 친숙성(10%), 조망·전망(8%) 등이 꼽혔다.

요즘은 이런 요소들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세권’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지하철이나 버스 접근성이 좋은 역세권이 있고, 여기에서 파생된 몰세권(쇼핑몰 인접), 스세권(스타벅스 인접), 맥세권(맥도날드 인접), 편세권(편의점 인접) 등 일상에서 자주 찾는 시설들을 중심으로 한 용어들이 생겨났다. 슬세권(슬리퍼 신고 갈 수 있는 편의시설 접근성), 숲세권과 공세권(공원 접근성)처럼 쾌적한 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위한 표현도 있으며, 백세권(백화점), 학세권(학교 및 학원 근접, 이른바 초품아), 의세권(의료시설), 도세권(도서관), 법세권(공공기관) 등도 언급된다.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꿈의 입지를 다세권이라고도 한다. 주세권(퇴근 후 술집 밀집지역)은 젊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고, 씁쓸하지만 현실을 투영한 옆세권(서울 옆 지역)이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연령대, 가족 구성, 직업과 경제적 여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를 지언정 기준이 되는 시설 또는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고 얼마나 편리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는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세권들이 대부분 도보를 기준으로 형성된 생활권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일상의 주요 공간들이 걸어서 이동가능한 거리 내에 밀집되어 있을 때 그 주거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도시정책은 단순한 교통인프라 확장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골목길의 재발견에 주목해야 한다. 보행 친화적인 길, 안전하고 쾌적한 골목길, 그리고 다양한 생활 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도시 구조의 세심한 설계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골목길은 자동차 통행이 불편하지만 집과 상점, 이웃과 일상이 만나는 공간, 도시의 리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대로변과는 달리, 골목길은 천천히 걷고, 멈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놀고, 이웃들이 인사하고, 작은 가게들이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이런 골목길이야말로 진짜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드는 핵심이 아닐까?

오래된 골목을 허물지 않고, 차량통행로나 가로시설물을 만드느라 단절된 보행로를 연결해서 걷기 좋은 길, 머물 수 있는 공간, 작은 가게들과 녹지가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골목은 도시의 과거를 품은 동시에, 미래의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길이 되고 또 사람을 다시 불러 모은다.

경리단길은 전국에 40개가 넘는 ○리단길를 만들었고, 도쿄에는 신주쿠, 동경역 주변 대로조차 주말에는 차없는 보행자 천국이라는 넓은 골목길을 만들어 중심지를 휴먼스케일로 변화시켰다. 부산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골목길엔 해리단길(해운대구), 전리단길(부산진구) 등 ○리단길 이름을 붙이고 사하구 감천문화마을도 좁은 길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골목길이다.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시티는 정책과 계획에 의해 오랜시간에 걸쳐 조성되지만 골목길은 사람들이 하나둘 찾고 입소문으로도 힙지가 될 수 있다.

결국, 좋은 입지란 단순히 가까운 곳이 아니라, 걷는 즐거움과 일상의 이야기가 담긴 길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 중심의 도시, 그리고 골목이 살아 숨 쉬는 거리에서, 진정한 ‘세권’의 가치는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