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정국이 조기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급속 전환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르면 8일 대선 날짜를 정한다. 정치권에선 헌법에 규정된 두 달을 꽉 채운 오는 6월 3일이 선거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4일 조기 대선 사유 확정과 동시에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각 정당은 촉박한 일정을 감안해 선관위 출범 등 일제히 선거 체제 가동에 돌입했다. 국운이 달린 60일의 시작이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왼쪽),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자유통일당이 주최한 ‘4·5 광화문 혁명’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복귀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는 벌써부터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원톱이다. 이 대표는 대선일 공표 직후 대표직을 사퇴하고 선거전에 뛰어들 계획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김문수 홍준표 한동훈 오세훈 등이 거론된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당 출신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이라는 호재를 딛고 0.73% 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던 3년 전 선거를 반드시 설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8년 전 붕괴의 재연은 결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선다. 대선까지 두 달간 정치 공방이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야기된 지난 4개월의 혼란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민 일부는 진보와 보수 양 극단으로 갈라져 심리적 내전을 겪었다. 그 갈등이 다행히 헌재 선고 후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밑바닥에서 끓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이다. 그동안 여야 정치인들은 대립과 분열을 조정하고 통합하기는커녕 이에 편승하거나 오히려 조장해온 게 사실이다.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극우 세력을 부추기고 이들의 폭력 행위를 두둔하는 듯한 언행을 마다 않았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상대를 향해 “유혈 사태” “몸 조심” 등 강성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국가 전체가 아니라 진영 내 극소수 팬덤만 바라보는 정치를 해왔다.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헌재까지도 심각한 정치 문제로 지적한 사안이다.

현재로선 이 대표가 지지율 1위이지만,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 비율이 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 이 냉소의 의미를 정치권은 직시해야 한다. 8년 새 대통령 2명의 탄핵을 겪으며 한국은 ‘87체제’가 낳은 정치 시스템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 저주와 반목 뿐인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 필요성이다. 비극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이번 대선이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이 상태로라면 어느 쪽이든 중도층 잡기에 올인할 가능성이 높다. 세금 깎기, 현금 퍼주기 같은 어설픈 포퓰리즘 공약이나 남발하는 식이다. 그러나 국내외 여러 도전에 둘러싸인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 그 어느 시점보다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경쟁해야 할 때다. 윤 전 대통령 역시 한 줌도 안 되는 지지세력 선동이나 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그게 국민을 위한 마지막 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