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달 그림자 같은 1061일

강골검사 대권 잡았지만 정치초보 약점 극복 못해

연이은 거짓말 불신 누적, 계엄 오판으로 몰락의 길

최현진 기자 namu@kookje.co.kr
| 입력 : 2025-04-07 19:18:03
| 본지 19면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선했다. 국정감사장에서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강직한 검사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강골검사는 그의 대명사였다. 국민은 정치꾼과 다를 것으로 봤다. 정치 선언을 한 지 9개월 만에 대권을 잡았다. 한국 정치사상 이런 인물은 없었다.

시민은 열광했다. 그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믿었다. 대통령 취임사를 들었을 때 믿음은 신뢰로 이어졌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자유는 승자독식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민주주의 위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지목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 과학과 진실이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랬던 그가 임기를 반 정도 채우고 쫓겨났다. 야당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며 비상계엄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군대와 경찰을 보냈다. 영장 없이 선관위에도 군인을 보냈다.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을 체포하려고 했다. 계엄 요건도 갖추지 않았다. 파면이 선고된 지난 4일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1061일 되는 날이었다. 그가 왜 실패했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은 오히려 이 점을 좋게 평가해 그에게 ‘별’을 달아주었다. 정치 때가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능력은 별개 문제다. 순수하다고 능력마저 없으란 얘기는 아니었다. 새로운 리더의 성공은 새롭기만 해선 안 된다. 역량도 갖춰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뚜껑을 열었더니 속이 빈 강정이었다. 정치 기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민주주의 정치는 고단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토론하고 숙의해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게 민주공화정이다. 처음엔 소통하는 듯했다. 도어스테핑을 하며 국민과 대화하려 했다. ‘바이든 날리면’ 발언 논란이 있은 후 소통은 자취를 감췄다. 야당은 물론이고 당내 다른 의견이 있는 정치인과 대화가 없었다. 자기 편이더라도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경청할 자세가 몸에 배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랜 특수부 검사 경험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상대는 범죄자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단죄 대상이라 여겼다. 정치가 아니고 통치하려 했다. 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드러났다. 취임 후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자 주변에서 영수회담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범죄자와 면담은 부적절하다며 거부했다. 야당 대표와는 딱 한 번 만났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대패한 후 위기에 처하자 마지못해 만났다. 마음이 없었으니 성과도 없었다. 야당 대표와 좋아한 술이라도 같이 마시며 협치해야 했다.

그는 또 거짓말을 많이 했다. 거짓말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다. 자기 밧줄에 자기가 묶여 버렸다. 지키지 못할 말을 쉽게 하니 결국 거짓말이 된 것도 부지기수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하더니 부인 관련 특검은 무시했다. “제 아내는 주식 투자로 손해만 봤다” “장모는 남에게 십원짜리 한 장 피해 입힌 적 없다” “이웃집 할머니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주었다” “명태균에게 여론조사 의뢰한 적도 없고 보고서도 받아본 적이 없다” 등이 대표적 거짓말이다.

거짓말 정점은 탄핵정국 때였다. “정치인 법조인 체포 지시하지 않았다.” “포고령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됐지만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입벌구(입만 열면 구라)’란 별명이 붙었겠는가.

그에게서 인문학적 소양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다움은 인문 공부에서 나온다. 그게 선정의 바탕이다. 그는 9수 끝에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 때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법시험을 위한 공부였던 것 같다. 남을 의식한 배움(爲人之學·위인지학)이다. 자기 성숙을 위한 공부(爲己之學·위기지학)가 아니었다. 과거 검찰 고위직 중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검사가 여러 명 있었다. 한시나 고사를 인용하며 난국을 헤쳐 나갔다. 서예로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고전을 읽으며 자기를 돌아봤다.

수신(修身)이 부족하니 제가(齊家)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역대 영부인 중 가장 많은 의혹을 낳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명품백 수수, 고속도로 노선 변경, 공천 개입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의 사소한 잘못은 크게 보고, 자기의 큰 잘못은 작게 보는 게 문제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두 번 자기를 용서하니 나중엔 무뎌졌다. 성찰하지 않은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알게 됐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이 사람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의 잣대 또한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이야기다.

최현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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