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오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에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8일 전격 지명했다. 마은혁 헌법재판관과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했다. 두 명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헌재가 재판관 9명으로 완전체가 된다. 하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이 정쟁의 불씨가 됐다. 벌써 공방이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장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용단을 내린 것”이라는 평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 대행은 헌법재판관 지명과 관련 “법률가 언론인 사회원로 등 수많은 분들 의견을 듣고 숙고한 끝에 내릴 결론”이라며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밝혔다. 경제부총리 탄핵안이 발의됐고 경찰청장 탄핵심판도 진행 중임을 고려했다고 한다. 헌재 정상화를 우선해 결정했다는 것이다. 재판관 결원으로 헌재 결정이 지연되면 6·3대통령선거 관리, 추가경정예산안 준비, 통상 현안 대응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파행을 막기 위해 나름 고민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 처장을 지명한 것은 논란 거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4명 중 한명이 이 처장이다. 그는 내란 공모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된 상태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수사를 받을 수 있는 신분임에도 무리하게 지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을 향해 ‘마은혁을 임명하니 이완규를 받아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입길에 오르지 않고 합리적 보수 색채를 띤 법관도 많다.

민주당은 “위헌적 권한 남용”이라는 입장이다.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도 “재판관은 선출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인데 한 대행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처장 지명을 내란 세력의 헌재 장악 시도로 본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 처장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몫 지명에는 법적 문제가 없다며 오히려 마 후보자 임명에 유감을 표명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처장은 ‘미스터 법 질서’, ‘미스터 클린’이다. 법리에 밝고 헌법 이념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두둔했다.

민주당은 법에 의한 해결보다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게 순리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현직 대통령이 파면돼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고, 미국발 관세 압력은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물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오르고, 성장은 멈춰 내수 부양이 절실하다. 헌법재판관 지명을 둘러싸고 싸움할 시간이 없다. 민주당 지명 반대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된 후 자기 진영에 가까운 재판관을 지명하고 싶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의도로 반발하는 것이라면 볼썽사납다. 진영 이익보다 헌재 정상화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