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미래를 여는 열쇠인가, 일상을 깨뜨리는 칼날인가. 모바일 혁명보다 더 빠르고 더 큰 변화가 우리를 덮친다. 어떤 이는 ‘제2의 산업혁명’ ‘인류 진보의 특이점’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예견한다. ‘일자리의 종말’ ‘인간성 상실의 서곡’이라며 잿빛 사이렌을 울리는 이도 있다. 거대한 변곡점. 내 손에 든 나침반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나?
AI는 창작의 문턱을 극적으로 낮췄다. 과거 전문가의 영역이던 시 소설 그림 영상 음악. 이제는 누구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든다. 장비와 자본, 인맥과 기술이 없어도 상관 없다. AI 프롬프팅 몇 번이면 된다.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창작의 민주화’. 지식의 독점을 깨고 대중에게 성큼 다가섰던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따로 없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결국 전문가만 살아남는다”는 거다. 포토샵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다.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전문가의 편이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AI는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 ‘명품 콘텐츠’는 여전히 소수 전문가의 몫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AI 도움으로 화제의 책을 펴낸 무명 작가, AI로 만든 이미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평범한 학생, AI를 도구 삼아 유튜브 커리어를 시작한 중년들이 있다. 기회는 분명 있다. ‘안 될 이유’보다 ‘될 가능성’에 베팅한 사람들만이 그 문을 통과한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기획, 콘텐츠 제작, 데이터 분석 등 과거 여러 명이 협업해서 하던 일을 이젠 혼자서도 뚝딱 해낸다. AI 덕분이다. 비용은 줄고, 생산성은 오른다. 수십 억 들던 광고 영상? 수백만 원 수준이면 충분하다. 문제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거다. 산업 규모가 축소된다는 거다. ‘디지털 효율화에 의한 수축경제’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AI는 기존 산업을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장과 직업을 만들어낸다. TV에 집중되었던 마케팅 예산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그리고 다양한 개인화 채널로 분산됐다. 콘텐츠 총량의 폭발적 증가. 게다가 이제 브랜드는 대행사가 아니라 개인 제작자, 크리에이터와 협업한다. 산업의 ‘크기’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형태’가 재편되는 거다. 마부의 일자리는 없앴지만 철도 산업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든 증기기관을 떠올리면 쉽다.
AI는 평등한가? 겉보기엔 그렇다. 누구나 쓸 수 있다. 무료 툴이 널렸다. 사용법도 쉽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AI 리터러시(문해력)’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다. 단순한 사용 차원이 아니다. 사고 방식, 디지털 환경, 세계관의 차이다. 누구는 AI로 일당백의 일을 한다. 누구는 프롬프트 입력조차 해본 적이 없다. AI는 이 격차를 가속화한다. 그리고 이 격차는 무서운 속도로 고착된다.
하지만 기회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AI는 태생적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전례 없는 ‘기회의 평등’을 빚어낸다. 지역의 작은 상점이 글로벌 마케팅을 한다. 한 명의 콘텐츠 제작자가 전 세계 고객을 만난다. 자격증 학력 경력이 아니라, 감각과 실행력, 끊임없는 실험이 경쟁력이다. 맞다, AI는 차별하지 않는다. 혁신에 대한, 우리의 시선 차이를 드러낼 뿐이다.
기술은 항상 질문보다 빠르다. 시스템은 늘상 생각보다 늦다. 이 간극을 메우는 건 결국 ‘우리’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과 함께할 것인가. 어떤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 AI를 리드할 것인가, 아니면 AI에게 끌려갈 것인가. AI가 파괴의 칼이 될지, 창조의 쟁기가 될지는 AI를 사용하는 우리 손에 달렸다.
AI는 모든 것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다. 모든 걸 ‘다시 묻게’ 만드는 기술이다. 변화의 파도 앞에 선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안 된다’를 입에 달고 사는 평론가이거나, ‘된다’고 믿으며 손을 뻗는 실천가이거나. 안 될 이유는 너무 많다. 되게 만들 이유를 찾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AI라는 거울에 어떤 미래를 비출 것인가. 선택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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