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대한민국이 소재, 혹은 배경으로 사용될 때마다 느끼던 감정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엔 “이게 웬 영광”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으며 스스로 잘 산다고 생각하지도 못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처음 할리우드 히트작이 한국을 묘사한 것을 목격한 경우는 거장 로버트 올트만 감독의 영화 ‘매쉬M.A.S.H’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토대로 한 동명의 TV 시트콤이 등장했을 때다. 한국전쟁에 파병된 군의관들의 이야기였다. 미국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한국의 묘사는 형편없었다. 뿔이 거대한 물소가 논에서 쟁기를 끌고 농부들은 베트남 식 삿갓인 논라를 쓰고 있었으며 한국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한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였지만 그건 한국이 아니었다.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적 무지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한국인 무술 멘토’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 ‘레모REMO’에서도 한국인 묘사는 형편없었다. ‘한국 신안주’라는 곳 출신의 무술 고수가 등장하는데, 냉장고에서 사발에 담긴 밥을 꺼내서 중국식 젓가락으로 먹고 의상도 한복과는 전혀 달랐다. 미국인이 대충 생각한 한국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런 대충의 생각이 바로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이다.

이건 우리만 당한 게 아니다. 아주 옛날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안경을 쓰고 덧니가 튀어나온 일본인 캐릭터를 미국 백인 미키 루니가 괴상한 영어 발음과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연기하며 일본인들의 분노를 샀다. 더 옛날로 가 보면 초창기 할리우드에서 중국인은 무조건 마술사로 나오기도 했었다. 당시 청나라 출신으로 알려진 변발의 마술사 청링수가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인데 심지어 청링수 그 자체도 사실은 미국 백인이었다. 이제 이런 엉망진창까지는 만나기 힘들지만 우리는 아직도 할리우드가 다른 나라를,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을 묘사할 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덕분에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나 ‘블랙팬서’같은 마블 영화에서 한국이 잠깐씩 배경으로 등장했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K-팝 그룹이 주인공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나온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없었다. 장안의 화제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야기다. 의도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의 통합이 아니라 원래 하던 대로 대충 한·중·일 묶어서 젓가락 쓰고 쌀밥 먹고 김치랑 자차이랑 츠케모노가 섞여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극중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국밥’을 먹으러 가는데 뚝배기의 고증은 물론 ‘수저 밑에 냅킨을 까는’ 한국식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유명한 한국의 봉지 스낵은 물론 컵라면도 나오는데 할리우드 영화에서 ‘라멘’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라면’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건 처음 봤다.

이 작품은 단순히 이런 디테일한 한국적 특성에 대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무속 신앙으로부터 역사적인 배경, 그리고 작호도를 비롯한 고미술의 인용 등이 놀라울 정도로 한국을 연구한 듯 그려내고 있다. 당연하다. 연출을 맡은 매기 강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이며 주요 성우들을 비롯해 스태프들 중 한국계가 많았다. 하지만 이 현상에는 배경이 있다. 아무리 많은 한국계 인력이 제작에 참여했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하다. 주요 헤드급 스태프는 모두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계 스태프의 목소리가 높았고, 미국인 헤드들이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을 것이다.

K-팝이라는 분야가 오래 전부터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각광받으면서 해당 장르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세계인들의 숫자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예전처럼 ‘김치 자차이 츠케모노’식으로 대충 동아시아 문화를 엮어 미국인의 편리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가는 한국 관객은 물론 세계의 ‘한국 문화 팬’들의 집중포화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함부로 다루던 할리우드가 한국을 이제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