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국민에게 내놓는 첫 성적표이자, 역사가 던지는 냉정한 시험지다. 취임 100일 동안 대통령이 보여주는 첫 행보는 리더십의 본질과 국정 철학, 그리고 앞으로 다섯 해를 이끌 비전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역대 대통령들의 첫 100일은 시대의 과제와 지도자의 성격을 그대로 비춰왔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혼란 속에서 헌정 질서를 세웠고,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한복판에서 위기관리 리더십을 증명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로 개혁의 시동을 걸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 청산을 선언하며 정치문화를 바꾸려 했다.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저항에 직면하며 국민적 시험대 앞에 섰다. 역대 지도자들의 100일은 언제나 그 시대를 읽는 창이자 국정 방향을 예고하는 이정표였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금 그 시험지를 앞에 놓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지난 6월 4일 임기를 시작했다. 전통적인 취임식은 없었지만, 광복절 행사에서 국민 대표에게서 받은 ‘빛의 임명장’은 민주적 정통성을 새겼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징이 아니라 실질이다. 민생 통합 개혁이라는 세 가지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성적표의 핵심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금리 고물가 속에서 서민 경제는 한계에 다다랐고, 청년 세대는 주거와 일자리 불안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 누적된 양극화, 인구 구조 변화, 노후 불안은 해법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국제정세까지 요동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북핵 위기, 중동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 위기가 한국 외교와 안보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탄핵 정국에서 비롯된 정치적 불신과 사회적 분열은 대통령 리더십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취임 100일 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제도 보완, 검찰 개혁 추진, 긴축 재정을 통한 고물가 대응 등 개혁과 안정의 균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 과정에서 탄핵 논란까지 불거지며 정부의 도덕성과 제도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이는 대통령에게 투명한 인사 검증 시스템 구축과 국민 신뢰 회복이라는 과제를 더욱 무겁게 안겼다. 야당과의 협치, 정책 공감대 형성, 사회 갈등 봉합은 여전히 대통령 리더십의 진정성을 증명할 시험 과제다.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며, 신뢰를 얻지 못하는 리더십은 리더십이 아니다.

외국의 사례는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잘 보여준다.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속에서 취임 100일 만에 뉴딜 입법을 신속히 통과시켜 미국 경제 재건의 토대를 놓았다. ‘100일의 기준’이라는 정치적 잣대도 여기서 비롯됐다. 그의 리더십은 국민에게 희망을 돌려주었고, 미국은 다시 일어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취임 직후 진실화해위원회를 세워 분열된 사회를 화해로 이끌었다. 반대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는 포퓰리즘과 권력 집중으로 자원 부국을 빈곤국으로 전락시켰고, 짐바브웨의 무가베는 독립 영웅에서 독재자로 변질하며 경제를 파탄냈다. 올바른 리더십은 국가를 세우지만, 잘못된 선택은 한 세대를 잃게 한다는 냉혹한 교훈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상징보다 실질을, 언어보다 체감을 요구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 국민 통합, 그리고 미래 성장의 분명한 비전이다. 개혁은 실질적이어야 하고, 정책은 삶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이 과제에 응답할 때 국민은 신뢰를 보낼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실망과 불안은 커질 것이다.

취임 100일은 시작일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답안은 아직 쓰이고 있다. 그 답안이 민생 안정, 국민 통합, 미래 성장이라는 희망의 문장으로 채워져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여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성적표이자, 역사가 부여한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