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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데스크시각] 노장의 투혼이 주는 카타르시스 /염창현

멀린 오티와 이종범의 상대는 젊은 선수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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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오티라는 여자 육상선수가 있다. 196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쉰한 살이다. 원래는 자메이카 출신이나 2002년 슬로베니아 국적을 얻었다. 200m를 주 종목으로 하는 이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 6, 은 6, 동메달 3개를 딸 정도로 실력파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 여자 200m에서 동메달, 2000년 시드니 대회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쳐 '비운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다. 오티는 1980년부터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무려 7번이나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남녀 통틀어 전 세계 육상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만약 오티가 2008년 베이징 대회 육상 자국 100m 예선에서 0.028초 차이로 아깝게 출전권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8회 연속 올림픽에 나가는 대기록을 세울 뻔했다.

더 놀라운 것은 오티가 아직도 현역이라는 점이다. 오티는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여자 400m 계주에 슬로베니아의 마지막 주자로 출전했다. 오티의 현재 꿈은 11초67인 100m 개인 최고 기록을 11초50대까지 줄이는 것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 나가는 것이다. 오티는 은퇴시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프로야구 KIA의 이종범. 올해 마흔한 살(1970년생)인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되는 삼성 양준혁(1969년생)에 이어 야구판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선수다. 양준혁의 은퇴 선언이 있은 후 이종범은 언제 그라운드를 떠나는가가 팬들의 관심사가 됐다. 근데 이종범의 말이 걸작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정색을 했다.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기량이면 더 열심히 뛰어야지 왜 물러가느냐라고 항변도 했다. 그리고 무조건 나이 든 선수에게 은퇴하라고 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젊은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으면 끝까지 경쟁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일까, 요즘 이종범은 나이를 잊은 듯하다. '바람의 아들'로 불리던 전성기 때의 실력은 나오지 않지만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팀의 주축선수로 활동을 하고 있다.

1973년생 박찬호도 식지 않는 도전정신을 과시하는 중이다. 박찬호는 지난 1일 뉴욕 양키스에서 방출됐다.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더 이상 갈 곳은 없어 보였다. 국내 복귀설도 꾸준히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다. 자신을 '오뚝이 인생'이라고 정의한 박찬호는 "이 시련을 성장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겠으며 기회는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라고 재기의 의지를 드러냈다. 박찬호는 뉴욕 양키스에서 나온 지 나흘 만인 지난 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새 둥지를 틀며 팬들에게 한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122승을 올린 박찬호는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갖고 있는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기록을 깰 기회를 다시 잡게 됐다. 물론 일부에서는 약체인 피츠버그가 궁여지책으로 박찬호를 받아들였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살벌하기 그지없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기본 실력이 없는 선수를 무작정 영입할 리는 없는 일이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여러 가지. 어떤 이들은 야구장에서 인생의 축소판을 보기도 하고, 또 누구는 막판 역전극을 통해 생의 마지막 반전을 꿈꾸기도 한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 위업을 달성한 랜스 암스트롱은 수많은 환자들에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줬음이 분명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3위에 오른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의 어린 국가대표들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노장 선수들의 꺾이지 않는 도전정신 역시 보는 이들의 가슴 한편을 뭉클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승부를 떠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요즘의 무더위와 뒤이어 찾아온 장마 속에서도 꾸준히 스포츠에 관심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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