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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통에 대하여 /전진성

제대로된 상황 인식, 일관된 입장 없는 위정자들은 타국·자국민에게서 신뢰·경외심 못 얻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23 21:21:4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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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평화통일 방안과 통일세를 언급한 것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세심한 정책적 고려가 없었던 점도 문제이지만,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마당에 아닌 밤에 홍두깨 식으로 천명된 것이 더 큰 문제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 제안을 북한이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처럼 상대방을 아예 도외시하면서 이룩하려는 '평화적' 통일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얼마 전 김태호 신임 총리 내정자가 첫 소견을 피력하는 자리에서 "나는 소장수의 아들"이라고 말했던 것도 위의 경우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마도 자신이 서민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은데, 대통령의 발언만큼이나 어이없는 말이다. 정치적 이념과는 상관없이 그저 내가 서민 출신이니 서민을 이해한다는 식의 발언은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친기업 정서와 사회적 공정성 간의 가치 논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굳이 연관을 짓자면 '사회를 탓하지 말고 너희도 자수성가하라'는 말로 들린다. 국민의 정서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다. 무릇 소통이란 발화자와 수신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통은 상대방의 반응을 염두에 둔 행위로, 비록 도발적인 것일지라도 최소한 시의적절하고 앞뒤의 맥락에 부합해야 한다.

8·15를 며칠 앞두고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담화를 발표했다. 국권 찬탈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고 청구권 문제를 슬쩍 넘어간 것 등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 명료함과 시의적절성에 있어 적어도 우리 위정자들의 발언보다는 훨씬 소통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 측의 태도에 대한 향후 우리 사회의 반응은 "나는 소장수의 아들" 식으로 소통 불가능한 독백이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과거에 죄를 지었으니 독도 문제 등 주요 현안에서 한국 뜻을 따르라든가, 이와는 반대로 무작정 과거를 떨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하자는 식이라면, 이는 일본인들에게는 굳이 수용도 거절도 할 필요 없는 딸꾹질 소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예의 바를 필요는 없으며 상대방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도발도 필요하다. 관건은 구체적 맥락에 근거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다. 8·15와 관련된 좋은 사례가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고 70만 명가량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 가운데 10%인 7만여 명이 식민지배의 결과로 현지에 있던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전후 일본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 버림받았고 1965년 '한일협정'의 결과로 '청구권'이 말소되어 한국정부로부터도 피해를 보상받을 길을 잃게 되었다. 1970년 부산에 살던 원폭 피해자 손진두 씨는 일본에서 원폭 후유증을 치료받기 위해 목숨을 건 밀항을 시도하였고 불법입국죄로 체포된 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폭자 건강수첩'을 취득하기 위한 소송을 전개했다.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까지 받게 된 이 소송에서 손 씨는 전면승소를 거두었다. 손진두 씨의 과감한 '밀항'과 소송 투쟁은 감추어져있던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고 사회적 소통을 이끌어낸 그 나름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국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우리 정부의 무지와 무능에서 비롯되었다. '손진두 소송'에 놀란 일본 정부가 선수를 쳐서 가장 수혜자가 적고 가장 비용이 덜 드는 '인도적 시혜(?)' 방안을 내놓았을 때, 우리 정부는 자국민의 피해 상황은 조사도 않고 '통 크게' 합의해 주었으며 그 마저도 곧 잊고서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어디 원폭 피해자 문제뿐이랴. 항상 발빠르게 대응 논리를 찾는 일본 정부에 대해 때로는 택없는 강경 기조를, 때로는 뜬금없는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우리 정부가 그들에게 버거운 협상 상대로 보일 리 만무하다. 타국에 대해서든, 자국민에 대해서든, 제대로 된 상황 인식과 뚜렷하고 일관된 입장 없이는 신뢰도 경외심도 얻어낼 길이 없다. 우리 위정자들은 소통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모른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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