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말과 글의 남북접근, 정부가 막으려는가 /권순익

올 예산 절반 삭감,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무산 위기 처해

민족 동질화 외면한 정부 옹졸함에 아연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골샌님'과 '혁명가'란 말은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을 동시에 들은 사람이 있다. 3·1 운동후 중국으로 망명해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독립운동 끝에 연안에서 결성된 독립동맹의 주석을 지내고 북한에서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숙청당한 김두봉이 그러했다. 주시경의 제자였던 그는 화물선에 숨어 망명길에 오를 때도, 광복 후 조선의용군 4개 대대를 인솔해 연안에서 한반도까지 4700리를 행군해 온 후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될 때도 '조선말 사전' 원고뭉치를 끼고 있었다 한다. 부산 기장군 출신인 그의 외사촌 딸이 박차정 의사고 조카사위가 의열단의 영수 김원봉이다.

상해 망명 중에도 '깁더 조선말본'을 펴낼 정도로 조선말에 매달렸던 그를 두고 동지나 정적들이 붙인 별명이 골샌님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우리말 사랑이 오랜 분단에도 남과 북의 말과 글이 대체적인 동질성을 유지한 밑바탕이 됐다. 초기 북한정권의 2인자로 언어 정책을 총괄한 그가 남한에서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며 어문교육의 초석을 닦은 최현배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시경의 문하에서 김두봉은 수제자, 최현배는 애제자로 병칭됐는데 경남 울산 출신인 최현배는 5살 손위이고 고향이 인접한 김두봉과 유달리 친했다고 한다. 김두봉은 최현배가 참가했던 조선어학회의 맞춤법통일안을 수용했고 그 결과가 차이는 적고 닮음은 많은 오늘날의 남북한 어문이 된 것이다.

김두봉과 최현배만의 관계뿐 아니다. 일제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던 조선어학회 멤버들 모두가 그렇게 얽히고설켰다.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에서 사망한 이윤재와 한징도 그랬다. 이들이 우리말큰사전을 준비할 때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하고, 철저히 승복했던지 당시 서울 장안에선 "회의는 조선어학회처럼 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해방 후 체제를 달리 선택했어도 같은 뿌리의 사람들이 한길을 닦았기 때문에 지금도 남한사람이 북한의 출판물을 읽고, 탈북자들이 남한의 책을 읽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서 급속하게 이질화가 진행돼온 남북한에서 말과 글만 예외일 수 없다. 분단 45년 만에 합쳐진 독일만 해도 통일 후 통일독일어 사전을 펴내니 표제어 11만5000개 중 5%가 훨씬 넘는 6000여 개의 새 단어가 등록됐다고 한다. 더 심각한 건 같은 단어의 뜻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서독 출신이 나(Ich) 너(Du) 같은 개인적 단어를, 동독 출신이 사람(man) 같은 집단적 단어를 더 선호하는 등 달라진 언어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이 함께 '괴테사전'을 만드는 등 언어적 접근작업은 계속됐는데도 그렇다.

우리도 남북한의 언어를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주도로 1991년도부터 중국의 장춘 베이징 등지에서 남북학자들의 만남이 이어지고 있고 국어 순화, 방언 문제 등에는 성과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 수행에 필요한 경비문제 등을 감안하면 결국은 우리 정부의 노력과 지원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고은 시인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자신이 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에 남북사회문화사업으로 시작, 어휘 30만 개 수록을 목표로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참가해 진행되는 이 사업에 대해 정부는 올해 예산 30억 원의 거의 절반을 삭감했다. 천안함 사건 등에 따른 남북경색의 여파라고 한다.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연구용역자들이 떠나고 북에 연구지원비가 전달되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답보하거나 후퇴할 게 뻔하다.

천안함 사건 등을 놓고 북한정권에 분노하는 이는 많다. 그러나 분노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전 편찬 지원을 줄이는 데 공감할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나라 규모에 비하면 몇 푼에 불과한 돈을 지렛대 삼아 민족의 동질화작업을 외면하는 정부의 협량(狹量)엔 아연할 뿐이다. 남의 민족의 핍박 속에서 앞서 간 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지킨 말과 글이다. 마침 그제는 한글날이었다. 남과 북의 그 많은 기념일 중에서도 유일하게 같은 명칭을 쓰는 날이 '한글날'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수소트램, 3년뒤 울산서 먼저 달린다…2024년 양산
  2. 2김해고 두 선후배, 엇갈린 야당 캠프행
  3. 3부산교통공사 사장 공모에 10여 명 몰려
  4. 4재건축 대안으로 집값 상승 효과 커…리모델링 수주 경쟁
  5. 5“가덕신공항 전면 재검토”…9일 만에 말 바꾼 최재형
  6. 6기장군 오지 ‘1300원 택시’ 31대 시동
  7. 7지역인재 40% 뽑는다지만 부울경 의대는 좁은 문
  8. 8중국 헝다 파산설,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임박…요동치는 금융시장
  9. 9‘옛 당감4동 주민센터 정류장’ 옆 주거지 주차장 12면 폐지
  10. 10시민공원부터 산복도로까지…일상 공간이 극장이 된다
  1. 1김해고 두 선후배, 엇갈린 야당 캠프행
  2. 2“가덕신공항 전면 재검토”…9일 만에 말 바꾼 최재형
  3. 3국힘 2차 토론회, 윤석열 공약 표절 집중 견제 받아
  4. 4굳히기-뒤집기 갈림길 ‘명낙’ PK대전 막 올랐다
  5. 5장진호 영웅들의 마지막 임무 ‘귀환’…문 대통령 “이들 희생으로 나도 존재”
  6. 6경선 경쟁자 추미애·김두관, 이재명 대장동 의혹 엄호사격
  7. 7미국 국방부 “한국전쟁 종전선언 논의 열려있다”
  8. 8차기 노리는 부산 야당 중진 ‘리스크 털기’에 명운 달렸다
  9. 9무주공산 기장군수 쟁탈전 향배, 3선 오규석에 물어봐
  10. 10현수막 걸고 문자 쏘고…출마설 인사도 이름 알리기 나서
  1. 1수소트램, 3년뒤 울산서 먼저 달린다…2024년 양산
  2. 2재건축 대안으로 집값 상승 효과 커…리모델링 수주 경쟁
  3. 3중국 헝다 파산설,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임박…요동치는 금융시장
  4. 4연금 복권 720 제73회
  5. 5신호탄 쏜 전기료…물가 줄줄이 뛴다
  6. 6부산 ‘복합청년몰’ 폐업률 전국 두 번째
  7. 7부산도시공사 감사직 11명 도전장…市, 신임 사장 곧 지명
  8. 8부산롯데호텔, 프랑스 스파 ‘조지앙 로르’ 오픈
  9. 9유통가, 가을철 캠핑용품 최대 40% 할인
  10. 10스포츠 속 과학을 찾아서…‘랜선 과학축전’ 내달 2일 개막
  1. 1부산교통공사 사장 공모에 10여 명 몰려
  2. 2기장군 오지 ‘1300원 택시’ 31대 시동
  3. 3지역인재 40% 뽑는다지만 부울경 의대는 좁은 문
  4. 4‘옛 당감4동 주민센터 정류장’ 옆 주거지 주차장 12면 폐지
  5. 5거제 반도유보라 견본주택 24일 개관
  6. 6방역 격무로 극단 선택, 동구 간호사 순직 인정
  7. 7오늘의 날씨- 2021년 9월 24일
  8. 8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256> 만성질환 시달리는 이순옥 씨
  9. 9[뉴스 분석] 부산시, 공영개발로 급선회…재원·사업성 확보 관건
  10. 10옛 LG사이언스홀, AI 체험관으로 내달 5일 재개관
  1. 1손흥민·황희찬의 EPL 코리안 더비…먼저 웃은 ‘손’
  2. 2아이파크, 리그 5위로 껑충…무승 ‘아홉수’ 탈출 언제쯤
  3. 3이강인, 레알 마드리드전 데뷔골…황의조, 2경기 연속 득점포 가동
  4. 46·7회 12득점…롯데, 삼성과 최종전 웃었다
  5. 5서채현 첫 금메달…도쿄 설움 달랬다
  6. 6파죽지세 한국 여자핸드볼…조별리그 전승
  7. 7득점 기계 레반도프스키, 유러피언 골든슈 첫 수상
  8. 8롯데, '5강 적수' SSG에 8 대 9 역전패
  9. 9고진영·김효주·전인지…부산에 ‘골프 여제’ 총출동
  10. 10야속한 볼 판정...롯데, 추석에 열린 첫 홈경기서 9 대 11 패
우리은행
PK상임위장의 지역발전 약속
민홍철 국방위원장
대선주자를 만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 “文정부 탈원전 정책 손볼 것…원전 밀집 PK 피해는 보상”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2021년 6월 25일 아침에
한 도시의 리더가 된다는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무위자연(無爲自然) 정신으로 살아가기
기고 [전체보기]
감정노동자의 이유 있는 반란 /박보서
대만 품은 UN을 상상하며 /우자오셰
기명칼럼 [전체보기]
복지국가 지속가능성과 기본소득
“일본, 대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 같은 선거토론 회피 모의…‘제2 김대근’ 다신 없어야 /임동우
일본 군국주의 살풀이로 전락한 올림픽 /권용휘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판소리 공연의 매력
현대음악에 맞는 기보법 필요
도청도설 [전체보기]
소아과 살리기
개비리길
독자의 소리 [전체보기]
슬기로운 코로나19 대처방법 /신우원
과속은 패가망신 지름길 /박정도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감칠맛이라는 배후세력
저지(Jersey) 우유
사설 [전체보기]
해안 뒤덮은 폐플라스틱, 죽음의 바다 이대로 둘 건가
연휴 뒤 심상찮은 조짐…전국 재확산 차단 주력해야
여론 광장 [전체보기]
코로나시대 커뮤니티 비즈니스 ‘관광두레’ /조윤미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혁신, 엑스포 그리고 해리티지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이러려고 부동산 전수조사 했나
이준석, 돌풍과 역풍 사이
정책 제언 [전체보기]
가상화폐 정책과 블록체인 특구 /김홍배
국가 물류경쟁력과 해운선사 공동행위 /김병진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필하모니 감상시간
오월의 노래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다시’ 검찰을 생각한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최고의 와인은 어디에 있을까?
와인의 가치
특별기고 [전체보기]
‘대한민국 부산호’ 항해가 성공하려면 /오성근
공공콘텐츠 없인 북항 성공 없다 /서의택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임희지의 ‘난초’
백제 산수문전
  • 제23회부산마라톤대회
  • 극지논술공모전
  • 조선해양사진 및 어린이 그림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